2010年5月6日木曜日

 상실의 시대 - 돌격대 나오코






  내가 '돌격대'와 그의 라디오 체조 이야기를 하자 나오코는 킥킥 웃어댔다. 우스갯소리로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나도 웃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본 것은 ㅡ그건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지만ㅡ정말 오랜만이었다.
  나와 나오코는 요쓰야 역에서 전철을 내려, 선로 옆 둑을 따라 이치가야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5월 중순경의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아침 나절에 호도독호도독 내렸다 그쳤다 하던 비도 낮이 되자 완전히 개었고, 나직이 덮여 있던 음산한 비구름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쫓기듯이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산뜻한 벚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햇살을 반짝반짝 반사하고 있었다.
  햇살은 이미 초여름이나 다름없었다.  스쳐 가는 사람들은 스웨터며 외투를 벗어, 어깨에 둘러메거나 팔에 걸치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는 누구나 행복해 보였다. 둑 저편에 보이는 테니스 코트에서는 젊은 남자가 셔츠를 벗고 반바지 바람으로 라켓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수녀만이 거은 겨울 제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어서, 그녀들 주위에만은 여름 햇살이 아직도 미치지 않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두 수녀는 얼굴로 햇볕 아래서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15분쯤 걸으니 등에 땀이 배었다. 나는 두터운 면 셔츠를 벗고 티셔츠 차림이 되었다. 나오코는 엷은 잿빛 트레이닝 셔츠의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세탁을 해서 잘 손질한 듯했고 색깔이 바래 있어 느낌이 좋았다.
  훨씬 전에 그와 똑같은 셔츠를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그저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그녀에 대해서 그 당시, 나는 그렇게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공동 생활이란 어떤 거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게 즐거워?"
  "잘 모르겠어. 이제 한 달이 좀 지났을 뿐이니니까"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아. 적어도 견디지 못할 일은 없으니까."
  나오코는 음료수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어 입을 닦았다. 그리고 몸을 굽혀 주의 깊게 구두 끈을 고쳐 맸다.
  "그런데, 나도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공동생활?"
  "그래."
  "글쎄, 어떨까. 그런 건 생각하기 나름이야. 거북스런 일이 어느 정도 있다면 있지. 규칙이 까다로운데다가 돼먹지 않은 녀석이 으스대고, 동거인은 아침 여섯 시 반에 라디오 체조를 시작하고, 뭐 그런 일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면 특별히 신경 쓰일 건 없어. 여기밖에 지낼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지낼 수도 있지. 그저 그런 거야."
  "그렇겠지." 하고 그녀는 수긍하더니, 잠시 무엇인가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리고는 신기한 것이라도 들여다보듯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심히 보니 나오코의 눈은 놀라우리만큼 깊고 맑아 보였다. 그녀가 그처럼 맑은 눈을 갖고 있는 줄은 그때까지 미처 알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녀의 눈을 가만히 쳐다볼 기회도 없었다. 둘이서만 걸어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한 것도 처음이 었다.
  "기숙사 같은 데 들어갈 생각인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냥 좀 생각해 본 거야. 공동 생활을 한다는 게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고. 그리고 그건 말하자면··· ···."
  나오코는 입술을 깨물면서 적당한 말이나 표현을 찾고 있었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잘 모르겠어. 그만 됐어."
  그것이 대화의 끝이었다. 나오코는 다시 동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나는 조금 뒤에서 걸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거의 1년 만이었다.  1년 동안 그녀는 형편없이 야위어 있었다. 탐스럽던 볼은 살의 거의 빠졌고, 목덜미도 훨씬 가늘어져 있었다. 야위었지만 뼈가 앙상하다든가 건강이 안 좋다든가 하는 인상은 전혀 아니었다.  그녀의 야윈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차분해 보였다. 마치 어딘가 비좁은 장소에 살짝 몸을 숨기고 있는 사이에, 몸이 멋대로 가늘어져 버리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그때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뻤다. 나는 그 점에 대해 그녀에게 뭔가 이야기 하려고 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무슨 목적이 있어서 여기에 온 것은 아니었다. 나와 나오코는 중앙선 전철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혼자서 영화라도 볼까 해서 나왔던 것이고, 나는 간다(神田)의 서점에 가는 길이었다. 그러니까 둘 다 특별히 볼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녀가 내리자고 해서 나는 전철에서 내렸다. 그것이 우연찮게 요쓰야 역이었을 뿐이다.
  하긴 단둘이 있게 되자 우리는 서로 주고받을 만한 화제 같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왜 나오코가 전철에서 내리자는 말을 꺼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당초 화제랄 게 전혀 없었던 것이다.
  역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항상 1미터 정도의 간격이 벌어져 있었다. 물론 그 거리를 좁히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좁힐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어색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나오코의 1미터쯤 뒤에서 그녀의 등과 곧고 검은 머리를 보면서 걸었다. 그녀는 커다란 갈색 머리핀을 꽂고 있어서 옆으로 향 할 때마다 작고 하얀 귀가 보였다.
  가끔 그녀는 뒤돌아보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얼른 대답할 수 있는 말도 있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내게 들리든 들리지 않든 그런 것은 그녀에겐 아무래도 좋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다 해버리고는 다시금 앞을 향해 계속 걸었다. 아무러면 어때, 산책하기에 좋은 날씨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체념했다.
  하지만 산책이라기엔 그녀의 걸음걸이가 좀 지나치게 빠른 것 같았다. 그녀는 이이다바시에서 오른쪽 교차로를 지나 오차노미즈 고개를 올라 그대로 혼고로 빠졌다. 그리고 전철 선로를 끼고 고마고메까지 걸었다. 상당한 거리였다. 고마고메에 이르렀을 때 해는 이미 저물어 있었다.
평온한 봄날의 저녁 무렵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나오코는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고마고메야 몰랐어? 우린 빙 돌아온 거야"
  "왜 이런 데까지 온 거야?"
  "나오코가 온 거야. 난 그저 뒤따라왔을 뿐이고."
  우리는 역 근처의 국수집에 들어가 가벼운 식사를 했다.
  갈증이 나 있던 나는 혼자서 맥주를 마셨다. 주문하고부터 다 먹을 때까지 우리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걷느라고 피곤해서 조금 늘어져 있었고, 나오코는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올려놓은채 도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텔레비젼 뉴스에서는 일요일인 오늘은 어떤 행락지든지 모두 인파로 꽉 차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요쓰야부터 고마고메까지 걸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아주 건강한 편인데" 하고 나는 국수를 다 먹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
  "놀랐어?"
  "응."
  "이래봬도 중학교 시절엔 장거리 선수로 `10킬로미터나 15킬로미터도 뛰었어. 게다가 아버지가 등산을 좋아해서 어릴 적부터 일요일이면 등산을 했지. 그리고 집 뒤가 바로 산이잖아? 그러니까 다리도 허리도 튼튼할 수 밖에."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래. 다들 나를 연약한 여자로만 생각하지. 하지만 사람은 겉보기와는 다른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덧붙이듯 살짝 웃었다.
  "미안하지만 난 꽤 지쳤어."
  "미안해, 온종일 끌고 다녀서."
  "하지만 나오코와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 단둘이서 이야기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잖아."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해 내려 해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저어, 혹 괜찮다면ㅡ혹 거북하지 않다면이란 뜻이지만ㅡ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처지? 하고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처지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아마도 내가 지나치게 놀란 눈치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잘 설명할 수는 없어" 하고 나오코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녀는 트레이닝 셔츠 소매ㅡ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전등불이 그녀의 솜털을 고운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처지라는 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어. 좀더 다른 표현으로 말하려 했는데··· ···."
  그녀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잠시 벽에 걸린 달력을 보고 있었다. 마치 거기서 뭔가 적당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지 않으까 하고 생각하며 보는 것처럼. 하지만 물론 그런 것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고 머리핀을 만지작 거렸다.
  "상관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나오코가 말하려는 그 뜻은 어느 정도 아 것 같으니까. 나 역시 어떻게 말해야 하 지 잘 모르겠지만."
  "잘 설명할 수가 없어" 하고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요즈음 늘 이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 뭔가를 말하려 해도 늘 빗나가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거야. 빗나가거나 전혀 반대로 말하거나 해. 그래서 그걸 정정하려면 더 큰 혼란에 빠져서 빗나가 버리고, 그렇게 되면 처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조차 알 수 없어. 마치 내 몸이 두 개로 갈라져서 쫓고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한복판에 굉장히 굵은 기둥이 서 있어서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술래잡기를 하는 거야. 꼭 알맞은 말이란 늘 또 다른 내가 품고 있어서, 이쪽의 나는 저대로 따라잡을 수 없게 돼."
  나오코는 얼굴을 들며 내 눈을 응시했다.
  "그런 느낌 알 수 있어?"
  "많든 적든 그런 느낌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모두가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지만 정확하게 표현이 안 되니까 초조해지지."
  내가 그렇게 말하지 그녀는 약간 실망한 것 같았다.
  "그것과는 또 달라" 하고 그녀는 말했지만 그 이상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만나는 건 아무 상관없어. 어차피 일요일에 늘 하릴없이 뒹굴고 있을 바에야 걷는 게 건강에도 좋으니까."
우리는 함께 야마노테선(線)을 탄 후, 나오코는 신주쿠에서 중앙선으로 갈아탔다. 그녀는 고쿠분지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어때 내 말투가 예전과 좀 달라졌어? 하고 헤어질 때 나오코가 물었다.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해. 하지만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어. 소직히 그때는 자주 얼굴을 보긴 했지만 그다지 얘기를 나눈 기억이 없으니까."
  "그래"하고 그녀도 내 말을 인정했다. "이번 토요일에 전화해도 괜찮을까?"
  "좋아 , 기다리고 있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