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年6月4日金曜日

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

  










일요일 아침, 나는 나오코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편지에
미도리 부친의 이야기를 썼다.


  나는 같은 강의를 듣는 여학생 부친의 병문안을 갔다가 오이를 먹었
어. 그랬더니 그도 오이를 먹고 싶어해서 드렸더니 아작아작 베어 드시
는 거야. 하지만 결국 5일후 아침에 세상을 떴어.
  나는 그가 아작아작 오이를 씹던 소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 사람
의 죽음이란 건 작고도 묘한 추억들을 뒤에 남기고 가는 모양이야.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나오코와 레이코 씨와 새집을 생각해. 공작새
나 비둘기, 앵무새와 칠면조, 그리고 토끼 생각을. 또한 비 내리는 아침
에 나오코와 거기 사람들이 입고 있던, 모자가 달린 노란 비옷도 기억하고
고 있어.
  따뜻한 침대 속에서 나오코를 생각하다 보면 아주 기분이 흐뭇해져. 마
치 내 곁에서, 나오코가 새우등을 한 채  잠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어. 그리고 그게 만일 정말이라면 얼마나 근사한가, 하고 생각하기도 해.
  때때로 지독하게 외로운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대로 건강하
게 지내고 있어. 나오코가 매일 아침 새들을 돌보고 밭일을 하는 것처
럼, 나도 매일 아침 나 자신의 태엽을 감고 있는 거야.
  침대에서 나와 이를 닦고, 수염을 깎고, 아침식사를 하고, 옷을 갈아
입고, 기숙사 현관을 나서서 학교에 도착할 때가지 나는 대략 서른여섯
바퀴쯤 빠득빠득 태엽을 감아.
  나오코를 만날 수 없어 괴롭긴 하지만, 그나마 나오코가 존재해 있다
는 사실이 도쿄에서의 생활을 그럭저럭 견디게 하고 있어. 아침에 일어
나 침대 속에서 나오코를 생각함으로써, 자, 태엽을 감고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살자는 마음을 다지게 되는 거야. 나 자신을 잘 느끼지 못하지
만 나는 요즘 자주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아. 아마 태엽을 감으면서 불쑥
불쑥 뭔가 중얼거리는 모양이야.
  하지만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태엽을 감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야. 빨래
를 끝내고 지금 방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이 편지를 다 쓰고는 우표
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 버리면, 저녁때까지 아무런 할 일이 잆어. 일요
일엔 공부도 하지 않아. 나는 평일의 강의 시간 짬짬이 도서실에서 착실
하게 공부하고 있으니까 일요일엔 달리 공부할 것도 없지.
  일요일 오후는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그리고 고독해. 나는 혼자서 책
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해. 나오코가 도쿄에 있었을 무렵의 일요일에
나오코와 둘이서 거닐었던 길들을 하나하나 떠오려 볼 때도 있어. 나오
코가 입고 있던 옷가지들도 매우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 일요일 오
후엔 나는 정말 여러 가지 기억들을 되살리곤 해.
  레이코 씨에게도 안부 전해 주기 바래. 밤이 되면 그녀의 기타 소리가
한없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

  나는 편지를 다 써서, 2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우체통에
넣었다. 그러곤 동네 제과점에서 계란 샌드위치와 콜라를 사들고,
공원 벤치에 가서 그걸로 점심을 대신했다.
  공원에서는 아이들이 야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들을 보면
서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되자 나는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었고, 책에 집중할 수 없
으면 천장을 올려다보며 미도리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부친은
정말 나에게 미도리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려 했던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물론 그가 정말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 그는 어쩌면 나를 다른누구와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찬비 내리는 금요일 아침 세상을 떠났으므로, 
이제 그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숨을 거둘 때의 그는 한층 더 작게 오그라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나
는 상상했다. 그리고 소각로 속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버렸을 것이
라고.
  그렇게 미도리 부친의 일을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차츰 처량한 기
분이 들어, 나는 서둘러 옥상의 빨래를 거둬들이고, 신주쿠로 나가
거리를 거닐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붐비는 일요일의 거리는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나는 통근 전철처
럼 혼잡한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포크너의 <8월의 빛>을 사들고, 가
급적 소리가 클 듯싶은 재즈 다방으로 찾아 들어가, 오네트 콜만이
라든가 버드 파웰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뜨겁고 진하고 맛없는 커피
를 마셨고, 방금 산 책을 읽었다.
  다섯 시 반에 나는 책을 덮고 다방을 나와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이런 일요일을 앞으로 몇십 번, 몇백 번 겪게 될 것인가, 하
고 문득 생각했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 하고 나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일요일이면 나는 태엽을 감지 않
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