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年4月17日日曜日






 



























































  기억이란 참 이상하다. 실제로 그 속에 있을 때 나는 풍
경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딱히 인상적인 풍경이라 생각하
지도 않았고, 열여덟 해나 지난 뒤에 풍경의 세세한 부분까
지 기억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솔직히 말해 그때 내
게는 풍경 따위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
해 생각하고, 그때 내 곁에서 걷던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생
각하고, 나와 그녀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고 다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뭘 보고 뭘 느끼고 뭘 생각해도, 결국 모든
것이 부메랑처럼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마는 나이였다.
게다가 나는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을 나를 몹시 혼란스러
운 장소로 이끌어 갔다. 주변 풍경에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여유 같은 건 아예 없었다.



                            .               .               .



  그렇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우선 떠오르는 것은 그 초원
의 풍경이다. 풀 냄새, 살짝 차가운 기운을 띤 바람, 산 능선,
개 짖는 소리, 그런 것들이 맨 먼저 떠오른다. 아주 또렷이.
너무도 선명해서 손을 뻗으면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더듬
을 수 있을 것 같은 정도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 사람 모습
은 없다. 아무도 없다. 그녀도 없고 나도 없다. 우리는 대
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나는 생각해 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그렇게나 소중해 보인 것들이, 그녀
와 그때의 나, 나의 세계는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그래, 나
는 지금 그녀의 얼굴조차 곧바로 떠올릴 수 없다. 남은 것
은 오로지 아무도 없는 풍경뿐이다. 



                            .               .               .



  물론 오래오래 생각하면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작고 차
가운 손, 사르르 미끄러져 내리는 아름답고 긴 머리카락, 부
드럽고 둥그런 귓불과 그 바로 아래 자그만 검은 점, 겨울이
면 즐겨 입는 우아한 캐멀색 코트, 언제나 상대의 눈을 지
그시 바라보며 묻는 버릇, 때로 떨리듯 울리는 목소리(꼭 세
찬 바람이 몰아치는 언덕 위에서 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이
이지들을 하나하나 모으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얼굴이
불쑥 떠오른다. 먼저 옆모습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녀와
늘 나란히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맨 처음 떠올
리는 것은 옆에서 본 얼굴이다. 그런 다음 그녀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려서 방긋 웃고는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말을 하며
내 눈을 지그시 들여다본다. 마치 맑은 시냇물 바닥을 재빠
르게 가로지는 작은 물고기의 그림자를 좇듯이.



                            .               .               .



  그렇지만 그녀의 얼굴이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기까지
는 약간 시간이 걸린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시간은 점점 길
어진다. 슬픈 일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처음에는 오 초면 충
분했지만 그것이 십 초가 되고 삼십 초가 되고 일 분이 되었
다. 마치 저녁나절의 그림자처럼 점점 길어진다. 그러다 이윽
고 저녁 어스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다. 그렇다. 내
기억은 그녀가 선 그 자리에서 확실히 멀어져 가고 있다.
마치 내가 예전의 선 그 자리에서 확실히 멀어져 가듯이.




                            .               .               .



  그런데도 기억은 어김없이 멀어져 가고, 벌써 나는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으며 문장을 쓰다 보면
때때로 격한 불안에 빠지고 만다. 불현듯, 혹시 내가 가장
중요한 기억의 한 부분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이 들기도 한다. 내 몸속 어딘가에 기억의 변경이라 할 만한
어두운 장소가 있어 소중한 기억이 모두 거기에 쌓여 부드
러운 진흙으로 바뀌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지금 내가 손에 쥘 수 있
는 모든 것이다.